"녹음합니다, 저를 지킬 최후의 보루니까요" | 정구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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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검찰 수사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민·형사 사건에서 녹음 증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찰 수사를 받는 동안 제대로 소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곧바로 재판에 넘겨지거나 고소 건이 무혐의로 종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 중 하나가 녹음이기 때문인데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조계에서는 “당장 범행이 이뤄지고 있지 않더라도 갈등의 소지가 생기면 언제든 녹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대표변호사는 최근 사건 의뢰를 받으면 가장 먼저 사건의 ‘녹음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서 “가정폭력이나 사기, 성범죄처럼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범행에 휘말린 경우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녹취록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게 필수”라며 “안 그래도 사건이 몰려 처리가 느린 경찰이 보완수사까지 떠맡게 되면서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공정하고 빠른 종결을 위해 사건 실체를 담은 녹음 증거 수집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마이크를 쥔 웹툰 작가 주호민씨가 지난 6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10개 장애인 단체와 함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스로 말하거나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법이 닿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발달장애 아동 등 학대 피해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제3자 녹음을 인정해 달라는 취지다. /연합뉴스
정구승 법무법인 일로 대표 변호사는 최근 사건 의뢰를 받으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바로 사건의 ‘녹음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 정 변호사는 “가정폭력이나 사기, 성범죄처럼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범행에 휘말린 경우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녹취록을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게 필수”라며 “안 그래도 사건이 몰려 처리가 느린 경찰이 보완수사까지 떠맡게 되면서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공정하고 빠른 종결을 위해 사건 실체를 담은 녹음 증거 수집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검찰 수사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민·형사 사건에서 녹음 증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경찰 수사를 받는 동안 제대로 소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곧바로 재판에 넘겨지거나 고소 건이 무혐의로 종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가장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 중 하나가 녹음이기 때문이다.
◇법조계 “녹음은 결백 입증할 유일한 수단”
상황이 이렇게 되자 법조계에서는 “당장 범행이 이뤄지고 있지 않더라도 갈등의 소지가 생기면 언제든 녹음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 변호사는 “고소·고발이 만연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녹음”이라며 “경찰관마다 수사 역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가장 객관적인 증거인 녹취가 있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혼 소송을 준비 중인 40대 여성 A씨는 최근 남편의 언성이 높아지면 즉시 휴대폰 녹음을 한다. A씨는 “이혼 관련해 변호사와 상담을 했더니 위자료나 양육권 같은 민사 영역이든 가정폭력 같은 형사 문제든 녹음이 없으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 부부싸움을 할 때면 매번 녹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역시 녹음이 꼭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성범죄의 경우,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이전에도 가해자의 범행을 입증하는 일이 피해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예컨대 경찰이 강제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한 녹취록을 여성 피해자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사에 소극적인 수사관을 만나고 녹취록이 없다면 피해 사실 입증이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국회가 성폭력 범죄의 경우 경찰이 신속히 수사해 사건을 검사에게 송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전건 송치’를 의무화했지만,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불안감은 줄지 않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 녹음 증거 수집이 중요한 건 남성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합의 아래 성관계를 하고도 여성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며 상대방을 준강간 등 혐의로 고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피고소인의 결백을 입증할 만한 폐쇄회로(CC)TV가 삭제될 때쯤 고소가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 남성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녹음’인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학교에 다니는 남성 B씨도 최근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합의하에 잠자리를 가졌다가 며칠 후에 준강간 혐의로 고소당했다. 합석 당시부터 헤어질 때까지 대화 내용을 녹음해뒀기에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됐다고 한다.
다른 범죄에서도 녹음 증거는 필수적인 경우가 많다. 한 법조계 인사는 “목격자 없이 은밀하게 이뤄지는 뇌물 수수나 서류로 증명이 어려운 명예훼손 같은 범죄는 녹음 말고는 증명할 방법이 거의 없다”며 “사건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검찰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증거를 잘 남기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고 했다.
◇문제는 ‘제3자 녹음’
이처럼 자신을 범죄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녹음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대화에 참여하는 개인이 해당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합법이다. 개인이 상대방 동의 없이 전화 통화를 녹음해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이른바 ‘제3자 녹음’이다. 현행법은 이런 대화를 몰래 녹음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식으로 수집한 녹음은 위법 증거라 원칙적으로 재판에서 쓸 수도 없다.
실제로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잡기 위해 제3자 녹음을 한 이들이 최근 잇따라 유죄 판결을 받고 있다. 창원지법 형사2부(재판장 김성환)는 배우자 차에 녹음기를 설치해 통화 내용을 녹취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C씨에게 지난달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C씨는 지난해 1월 배우자 승용차 좌석 밑에 녹음기를 부착한 다음 배우자와 내연 관계로 의심되는 남자 사이의 전화 통화를 녹음해 이를 이혼 소송 증거로 제출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 12일에도 부인의 외도 증거를 잡으려고 차량 등에 녹음기를 설치한 뒤 대화를 몰래 녹음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러한 제3자 녹음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는 지속적으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몰래 녹음’ 이외에는 배우자의 외도 증거를 찾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아동이나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 입장에선 보호자가 타인의 대화를 녹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가장 논란이 됐던 게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특수교사 사건이다. 주씨 아내는 2022년 9월 자폐증이 있는 아들이 불안 증세를 보이자 옷 속에 녹음기를 넣어 학교에 보냈다. 이 녹음기에는 특수교사 D씨가 주씨 아들에게 “아유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 정말 싫어”라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주씨 부부는 D씨를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녹취를 정당한 증거로 봐 D씨에게 벌금 200만원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장애를 가진 학생만 있는 교실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 행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D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녹취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은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주씨는 지난 6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10개 장애인 단체와 함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스로 말하거나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법이 닿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달라”고 했다. 발달장애 아동 등 학대 피해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제3자 녹음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제3자 녹음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판결이 최근에 또 나왔다. 2024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9살 학생에게 “너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공부를 그렇게 못 하면 되겠느냐”는 등의 발언을 반복해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부산의 초등학교 교사 E씨에 대해 대법원은 지난달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피해 아동 및 부모의 법정 진술, 같은 반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등은 증거로 인정했지만 피해 아동의 학부모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실 대화를 녹음한 파일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판결을 두고도 실제 아동학대 정황이 담긴 녹음인데 제3자 녹음이라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제3자 녹음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개정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돼 빠르면 이번 국정감사 이후 논의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아동, 노인, 중증 장애인처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경우에는 제3자 녹음을 허용하자는 게 골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