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최후의 방어선’ 소아응급실에 들이닥친 영장 | 오종훈 변호사
본문
지난 9월 30일 경기 남부 소아응급의료의 핵심 거점인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생후 4개월 된 영아 사망 사건의 의무기록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경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어린 생명을 잃은 유가족의 비통함은 감히 헤아릴 수 없으며, 사망의 정확한 원인과 진료 과정의 진실은 한 점 의혹 없이 엄정하게 규명되어야 마땅하지만, 진실 규명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들을 치료하는 진료 최전선에 대한 무분별한 강제수사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사법 편의주의와 공권력의 과잉 행사가 필수의료의 근간을 어떻게 뒤흔들고, 나아가 다른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선마저 어떻게 위태롭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으며, 환자가 없는 틈을 타 17분간만 신속히 집행해 진료 방해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생리와 실무를 무시한 변명으로, 당시 소아응급실 병상에는 경련을 일으키며 뇌 손상 위기에 처했던 생후 6개월 영아 등 중증 환아들이 긴박하게 진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의 손목을 직접 낚아채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환자 안전에 영향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명백한 현실 왜곡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소아응급 진료는 이미 붕괴의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진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입니다.
이들에게 영장을 들이밀며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소아응급실의 불이 완전히 꺼지는 날, 그 참혹한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지난 8월 5일 경기 수원시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구급차가 오가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9월 30일 경기 남부 소아응급의료의 핵심 거점인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경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생후 4개월 된 영아 사망 사건의 의무기록을 확보하겠다는 명분으로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생명을 잃은 유가족의 비통함은 감히 헤아릴 수 없으며, 사망의 정확한 원인과 진료 과정의 진실은 한 점 의혹 없이 엄정하게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진실 규명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들을 치료하는 진료 최전선에 대한 무분별한 강제수사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사법 편의주의와 공권력의 과잉 행사가 필수의료의 근간을 어떻게 뒤흔들고, 나아가 다른 무고한 아이들의 생명선마저 어떻게 위태롭게 만드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은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으며, 환자가 없는 틈을 타 17분간만 신속히 집행해 진료 방해는 전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는 응급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의 생리와 실무를 무시한 변명이다. 당시 소아응급실 병상에는 경련을 일으키며 뇌 손상 위기에 처했던 생후 6개월 영아 등 중증 환아들이 긴박하게 진료를 받고 있었다. 수사관들이 환자 처방용 컴퓨터를 점유하는 동안, 의료진은 즉각적인 약물 투여와 처방 오더를 내리기 위해 다른 빈 컴퓨터를 찾아 복도를 헤매야 했다.
17분은 관공서 책상 위에서는 짧은 찰나일지 몰라도, 호흡부전이나 급성 경련을 겪는 영아에게는 평생의 장애와 생사를 가르는 절대적인 골든타임이다. 그 순간 심정지 환아라도 실려 왔다면 진료 동선이 엉켜 치명적인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조용한 병원 한가운데서 실탄 총포를 쏜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총성은 순간이지만 현장에 가해진 극도의 공포와 흐트러진 집중력은 결코 17분이라는 시간으로 계량할 수 없다. 의료진의 손목을 직접 낚아채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환자 안전에 영향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명백한 현실 왜곡이다.
의료계의 절망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번 집행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임의수사 우선의 원칙’과 ‘최소침해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점이다. 강제수사는 피의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현저할 때 극히 예외적으로 발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은 영장 집행 전 병원 측에 전자의무기록(EMR) 임의제출 협조 요청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이어야 할 임의수사를 손쉽게 건너뛰고 예외인 강제수사를 곧바로 동원한 것이다. 이는 병원 전산 시스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과잉 수사다. 대학병원들은 10여년 전부터 작성 시점, 열람, 수정, 삭제 이력과 공인인증 전자서명이 서버에 초 단위로 영구 보존되는 EMR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사후 조작 시도 자체가 전산에 고스란히 남아 범죄 혐의를 자백하는 꼴이 되므로 의료진이 증거를 훼손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CCTV 역시 법정 의무 보존 기간이 있어 공문 요청만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설령 영장을 집행하더라도 환아가 누워 있는 응급실 병상이 아니라 병원 전산실이나 행정부서에서 조용히 추출하는 덜 침해적인 방법이 명백히 존재했다. 수사 편의를 앞세워 환자 치료 구역을 침범한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다.
의료계가 이번 사건을 목도하며 깊은 절망을 느끼는 이유는, 2017년 소아청소년과를 괴멸적 위기로 몰아넣었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악몽이 겹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사망이라는 비극적 결과만을 근거 삼아 의료진을 구속수사했으나 5년의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전원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2018년 100%였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023년 25.5%로 폭락했다. 최선을 다해도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 구속될 수 있다는 트라우마가 청년 의사들을 필수의료에서 등 돌리게 만든 것이다. 일본 역시 2006년 제왕절개 수술 중 산모가 사망해 집도의가 구속된 ‘오노병원 사건’으로 산부인과 붕괴를 겪었다. 이후 무죄가 선고되자 일본은 의료법을 개정하고 형사 단죄 대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독립적 ‘의료사고 조사지원센터’를 신설했다. 다른 의료 선진국들이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의료사고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사법 만능주의가 방어진료와 필수의료 기피를 낳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모순, ‘응급실 뺑뺑이’
오늘날 대한민국 소아응급 진료는 이미 붕괴의 임계점을 넘었다. 소아 필수의료의 건강보험 원가 보존율은 70~80%에 불과해 환자를 볼 때마다 20% 이상의 적자가 누적된다. 여기에 기대수명이 긴 소아 환자 특성상 악결과 발생 시 법원이 부과하는 손해배상액은 기본 10억원대를 웃돈다. 전국에 10여명 남짓한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어 응급실 당직의가 아이를 살려보려 응급 수술을 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는 현실 앞에서 어느 의사가 수술대에 서겠는가.
선한 의도로 응급 처치를 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형법상 면책에 인색한 한국 사법부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돈도 안 되고 법적 리스크만 거대하니 지방 병원들은 소아응급실을 닫았고, 부산이나 경주에서 다친 아이가 서울까지 이송되는 기형적인 ‘소아응급 뺑뺑이’가 일상화됐다. 그 결과 올 7월 기준 전국 14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소속된 전문의는 고작 104명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74%가 수도권에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9002명의 환아를 진료했고, 중증 환자 진료 건수 전국 1위를 기록한 경기 남부의 최후 방어선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개원가를 마다하고 밤을 새우며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중견 의사들 입에서 “이제는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절망이 터져 나왔다. 어렵게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진마저 등을 돌린다면 그 빈자리는 아무도 채울 수 없으며 소아의료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침몰하게 된다. 위기를 막으려면 세 가지 개선이 시급하다. 첫째,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인 소아 의료 수가를 원가 이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둘째, 응급의료에 대한 실질적 면책과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를 도입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을 보호하고, 민사 배상 역시 국가 책임 보상 기금을 확충해야 한다. 셋째, 응급실·중환자실 등 특수 진료 구역에 대한 엄격한 압수수색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 EMR 등 디지털 자료는 임의제출을 원칙으로 하고, 영장 집행 시에도 전산실을 통한 비대면 방식을 법제화해야 한다.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진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이다. 이들에게 영장을 들이밀며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소아응급실의 불이 완전히 꺼지는 날, 그 참혹한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출처 : ‘최후의 방어선’ 소아응급실에 들이닥친 영장 [법 뒤의 질문들] < 사회 < 기사본문 - 주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