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학폭 보험’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 | 오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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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험 시장에 등장한 ‘학교폭력 보험’은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직면한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현재 학교폭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두 가지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첫째는 생활기록부 기재와 입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경미한 사안임에도 무조건적인 학폭 신고와 소송으로 대응하는 경향이고 둘째는 반대로 명백하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가해학생 측이 기록 보존을 늦추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행정심판,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분쟁을 장기화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소송 만능주의 기류를 타고 등장한 ‘학폭 보험’은 학교 내 분쟁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될 우려가 큽니다.
현재 시판되는 학폭 보험은 피해학생의 치료비와 상담비를 보장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행정사나 변호사 선임 비용 등 법적 대응 비용을 담보하는 상품이 주를 이루는 만큼, 학부모들에게 ‘돈만 있으면 소송까지 가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학폭 분쟁이 격화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사과하면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로 먼저 사과해서는 안 된다”는 황당한 지침이 정설처럼 돌고 있습니다.
학폭 사안에 직면했을 때는 감정적인 거부나 무조건적인 부인보다 신중하고 현명한 대응이 요구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보험 시장에 등장한 ‘학교폭력 보험’은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직면한 씁쓸한 자화상이다. 예전 같으면 교실 안에서 담임교사의 중재나 학생 간의 화해로 마무리되었을 사소한 갈등마저 이제는 곧바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신고와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말다툼이나 일회성 감정싸움, 심지어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사소한 주장까지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학교폭력 조치 기록이 대학 입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 입시제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부모들은 이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양보하거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학교폭력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사법 만능주의가 학교를 지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교가 지녀야 할 최소한의 교육적 기능마저 마비되고 있다. 무엇이 진짜 학교폭력이며, 어디까지가 학생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일상적 갈등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정립과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현재 학교폭력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두 가지 극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첫째는 생활기록부 기재와 입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경미한 사안임에도 무조건적인 학폭 신고와 소송으로 대응하는 경향이다. 둘째는 반대로 명백하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가해학생 측이 기록 보존을 늦추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행정심판,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분쟁을 장기화하는 현상이다. 서울행정법원이 학폭 사건의 급증으로 인해 전담 재판부를 기존의 2배로 늘린 사실은 이러한 ‘학폭의 사법화’가 얼마나 심각한 수위에 도달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증이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학교폭력은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 안팎에서 발생한 상해, 폭행, 협박, 명예훼손, 모욕, 따돌림, 사이버 폭력 등으로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 피해를 주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이처럼 기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최근 법원은 무분별한 학폭 처분에 제동을 걸며, 학폭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일회성 말실수나 감정 표현을 넘어선 구체적인 ‘맥락’을 보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학폭 신고와 사법화의 실태
최근 법원이 학폭 처분을 취소한 사례들을 보면 이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선배에게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싸가지 없다”고 발언한 행위, 수련회에서 규율 위반을 지적하며 비속어를 섞어 비난한 행위, “실물과 사진이 달라 사기다”라며 외모를 지적한 행위 등이 대표적이다. 위와 같은 행위들은 분명 부적절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표현들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감정 표출을 무조건 학교폭력이라는 법적 틀로 포섭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이 제시하는 핵심 기준은 반복성, 공개성, 관계의 맥락, 그리고 실제 피해의 정도다.
이러한 소송 만능주의 기류를 타고 등장한 ‘학폭 보험’은 학교 내 분쟁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될 우려가 크다. 현재 시판되는 학폭 보험은 피해학생의 치료비와 상담비를 보장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되었을 때 행정사나 변호사 선임 비용 등 법적 대응 비용을 담보하는 상품이 주를 이룬다. 이는 학부모들에게 ‘돈만 있으면 소송까지 가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소송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낮아지면 합의나 교육적 해결을 시도하기보다 일단 법적으로 끝까지 버티고 보자는 식의 소송 남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보험이 결코 만능 방패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보험 약관은 고의로 행한 폭행이나 괴롭힘에 대해서는 면책 사유로 규정하여 보장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보험을 통해 아무리 강력한 법적 조력을 받는다 한들, 발생한 사실관계 자체가 뒤바뀌거나 불리한 증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제적 신고나 악의적인 과장 신고를 남발할 경우, 역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나 무고, 혹은 또 다른 형태의 학교폭력 가해자로 몰려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무너진 교권, 사라진 중재
학교폭력의 사법화가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 붕괴다. 과거에는 교사가 갈등의 중재자로서 아이들을 타이르고 화해를 이끌어내는 교육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중재 노력은 위험천만한 도박과 같다.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한쪽 학부모로부터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다른 쪽으로부터는 “편파적이다”라는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 심지어 학생의 비행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는 사례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교사들은 현장에서 점차 교육적 중재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단순히 절차를 안내하고 보고서만 작성하는 ‘행정 대행자’로 전락하고 있다. 학교 자체적인 자정능력이 상실되자 분쟁은 더욱 빠른 속도로 학교 문턱을 넘어 법률 시장으로 유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교가 교육 기관이 아닌 법적 공방의 전초기지로 변질되면서, 아이들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학폭 분쟁이 격화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사과하면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 절대로 먼저 사과해서는 안 된다”는 황당한 지침이 정설처럼 돌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법적으로 매우 어리석은 선택이다. 학폭위나 법원에서 징계 수위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가해학생의 반성 정도’와 ‘피해학생에 대한 화해 시도’이다. 법적 불이익만을 두려워해 사과를 거부하는 행위는 오히려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가중 처분의 근거가 될 뿐이다. 학폭 사안에 직면했을 때는 감정적인 거부나 무조건적인 부인보다 신중하고 현명한 대응이 요구된다. 본인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되, 사실과 다르거나 과도하게 부풀려진 부분에 대해서는 증거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정정해야 한다. 이때 직접적인 연락은 도리어 피해학생에게 압박이나 2차 가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담임교사나 전문 상담사 등 공식 통로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법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올바른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