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 영치금 압류해제가 생존권? | 오종훈 변호사
본문
영치금이란 교정시설에 수용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국가에 맡겨두는 일종의 교도소 안 ‘생활비’를 뜻합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 개념이 최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수감 중 법원에 낸 한 장의 신청서 때문에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히 폭행하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징역 20년을 확정받은 가해자 이모씨에 대해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1억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지만 가해자는 자발적으로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참다못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영치금을 압류해 배상금을 회수하려 했습니다.
실제 법원의 압류 결정까지 받아냈지만 가해자 이씨의 영치금 계좌에 남은 잔액은 고작 850원이었기 때문에 1년 반 동안 사력을 다해 회수한 금액도 겨우 40만원 남짓에 불과했는데요.
그런데 황당한 일은 가해자 이씨가 법원에 “매달 들어오는 영치금 중 10만~15만원 정도는 내가 교도소 안에서 쓸 수 있도록 압류를 풀어달라”며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 신청’을 낸 것입니다.
법원이 이번 영치금 압류금지 범위변경 신청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우리 사법부가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사법 정의의 저울은 언제나 가해자의 편의가 아닌,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과 안전을 향해 기울어져야 합니다.

‘영치금(領置金)’이라는 단어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생경한 법률 용어다. 교정시설에 수용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국가에 맡겨두는 일종의 교도소 안 ‘생활비’를 뜻한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생소한 이 개념이 최근 우리 사회의 공분을 자아내며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가 수감 중 법원에 낸 한 장의 신청서 때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무참히 폭행하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로 징역 20년을 확정받은 가해자 이모씨. 피해자는 형사재판과 별개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과 피해를 현실적으로 회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가해자는 자발적으로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참다못한 피해자는 가해자의 영치금을 압류해 배상금을 회수하려 했다.
실제 법원의 압류 결정까지 받아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가해자 이씨의 영치금 계좌에 남은 잔액은 고작 850원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판결 이후 약
1년 반 동안 사력을 다해 회수한 금액도 겨우 4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영치금이라는 마지막 보루마저 텅 비어 있는 현실 앞에서 피해자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더욱 황당한 일은 그다음 벌어졌다. 가해자 이씨가 법원에 “매달 들어오는 영치금 중 10만~15만원 정도는 내가 교도소 안에서 쓸 수 있도록 압류를 풀어달라”며 ‘압류금지채권 범위변경 신청’을 낸 것이다. 잔액이 850원밖에 없다던 채무자가 향후 가족이나 지인이 넣어줄 돈, 혹은 교도소 내 작업으로 벌어들일 작업장려금을 피해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선제적으로 법적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셈이다. 이 기막힌 소식에 피해자는 또 한 번 깊은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법적·윤리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수용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수용자의 생존권·처우권’과 범죄로 부서진 삶을 보정받아야 하는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법원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저울질해야 하는가.
우리 민사집행법은 채무자의 생계를 위협하는 전면적 압류를 막기 위해 일정 금액 이하의 최저생계비나 예금은 압류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가해자 측의 논리나 일부 인권론자들의 시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수용자 역시 인간이기에 교도소 안에서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고 생활용품을 구매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사치로 변질된 영치금
그러나 수용자의 영치금은 사회에 있는 일반 채무자의 최저생계비와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수용자는 의식주 전체를 국가 예산으로 제공받는다. 매끼 식사가 나오고, 철에 맞는 의류가 지급되며, 잠자리가 보장된다. 즉 생존을 위한 필수 자금은 이미 국가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교도소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거나 문구류, 우표 등을 구매하는 데 쓰이는 영치금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기보다는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추가적인 편의 자금’에 가깝다.
반면 피해자의 권리는 어떠한가. 피해자는 가해자의 흉악한 범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치명상을 입었고, 그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원이 인정한 1억원의 배상금은 단순한 금전이 아니라 피해자가 깨어진 일상을 재건하고 치료받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국가가 가해자의 기본 의식주를 모두 보장해 주는 상황에서 장차 영치금 계좌에 들어올 매달 10만원의 돈까지 가해자의 안위를 위해 보장해 준다면, 이는 피해자의 정당한 채권 회수 권리를 국가가 앞장서서 가로막는 꼴이 된다.
물론 가해자에게 외부 병원 진료비 등 정말로 생명이나 건강에 직결된 특수한 지출 요인이 있다면, 법원은 그 필요 금액을 꼼꼼히 소명받아 개별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매달 일정 금액을 고정적으로 매점 이용료 등으로 쓰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법원은 가해자의 편의보다 피해자의 고통 회복에 훨씬 더 무거운 무게추를 두어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가해자의 뻔뻔한 행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사법체계가 가진 거대한 공백, 즉 ‘판결은 이겼으나 실제 피해회복은 가해자의 선의나 요행에 기대야 하는’ 해묵은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재 우리 법제도에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신청하면 별도의 민사소송 없이도 배상을 명령하는 ‘배상명령 제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신속한 구제를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무리 수억원대의 배상명령이 내려지고 수십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된들(과거 n번방 조주빈 사건이 그러했듯), 가해자가 재산을 미리 빼돌렸거나 명의를 바꿨거나 “배째라” 식으로 일관하면 피해자가 돈을 받아낼 길은 사실상 막힌다. 가해자가 수감되면 합법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재산은 오직 영치금 계좌 하나뿐인데, 이마저도 잔액이 없으면 법원의 판결문은 한낱 종이호랑이에 불과해진다.
더 통탄할 노릇은 영치금을 압류하는 과정마저 오롯이 피해자 개인이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점이다. 피해자는 판결문을 들고 직접 법원을 오가며 강제집행 절차를 밟아야 하고, 가해자의 영치금 잔액이 얼마인지 수시로 교정시설에 전화해 확인해야 하는 기막힌 수고를 감내하고 있다. 범죄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는 마지막 집행 단계에서조차 국가는 보이지 않고, 피해자 홀로 가해자의 뒤를 쫓아야 하는 이 기형적인 구조야말로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빈틈이다.
피해자 중심의 사법정의 있어야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범죄 피해자들은 법적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스스로 위축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변호사로서는 고육지책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명령이나 압류 신청을 할 때 실제 거주지 대신 법무법인(변호사 사무실) 주소를 송달장소로 쓰라”고 조언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나 그 가족과 직접 접촉하는 일을 차단하고 개인정보를 숨기기 위한 유일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러나 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 꼼수 같은 노력을 피해자가 스스로 알아보고 비용을 들여 준비해야 하는가. 국가가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면, 최소한 범죄 이후의 사법 절차에서만큼은 피해자가 안심하고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영치금 잔액 조회 절차를 전산화하여 피해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가해자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국가 차원의 전담 집행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 차단하는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법 정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가해자의 영치금 15만원을 지켜주기 위해 법이 고민하는 사이, 피해자는 가해자가 출소 후 찾아올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수억원어치의 일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법원이 이번 영치금 압류금지 범위변경 신청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우리 사법부가 누구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사법 정의의 저울은 언제나 가해자의 편의가 아닌,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과 안전을 향해 기울어져야 한다.
